희빈 장씨(熙妃 張氏, 1660년 - 1718년)는 조선 시대 제19대 왕인 숙종의 후궁으로, 왕후가 아닌 후궁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희빈에 올랐다. 본명은 장씨(張氏)로, 경상북도 경주 출신이다. 그녀는 1678년 숙종의 후궁이 되어 정치적인 갈등과 권력 다툼 속에서 한때 권력을 행사했다.
희빈 장씨는 숙종과의 사이에서 아들인 이건(후에 제20대 왕인 경종)을 낳았다. 그녀의 아들은 왕세자가 되었지만,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지병으로 고생했다. 희빈 장씨는 아들의 왕위 계승을 위해 정치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그녀의 후궁으로서의 위치는 당시 조정 내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희빈 장씨는 숙종과의 관계에서 복잡한 권력 다툼에 휘말리기도 했으며, 특히 인현왕후와의 갈등이 두드러졌다. 결국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희빈 장씨는 왕세자와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려 했다. 그러나 숙종이 사망한 후, 그녀의 아들 경종이 즉위하자 권력의 흐름이 바뀌어, 희빈 장씨는 후궁의 지위에서 밀려나고 역사 속에서 잊히게 되었다.
그녀의 생애와 영향력은 조선 시대 후궁의 정치적 역할과 권력 구조의 복잡성을 잘 보여준다. 희빈 장씨는 후궁으로서의 위치와 그로 인해 경험한 권력쟁탈전이 조선 역사에서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